# page220세상에는 차마 끝을 보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그대가 아무리 극진해도 그대의 사랑은 중도에서 깨어지거나 희미해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기는 하나 그대는 어느 틈엔가 문득 낯선 곳으로 내몰려 버렸다. 그대는 아직 홀가분함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데 말이다. 중력이 일순 그대의 존재 곁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그대는 방향을 잡질 못한다. 견디지 못할 격한 고통은 아니라 해도, 적어도 그대는 너무 슬프고 만다.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대는 다시 원만해지리라. 하지만 마음속에는 늘 마감하지 못한 사랑이 남아 있다. 더 사랑하지 못하고 쓸쓸히 헤어졌던 그때 그 시절 상처의 기억은, 어쩔 수 없이 그대 기억 시스템 전반의 상처가 된다. 그곳에는 새로운 데이터를 저장할 수 없다. 다만 검은 표지를 꽂아둘 뿐이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그대는 어쩌면 살아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곰곰이 들여다봐라. 그대의 기억은 상처를 입었다. 그대의 존재도, 이제와 다시 길을 이으려 해도 사라져버린 그날은 도대체 이 우주의 어디쯤이란 말인가. 찾아갈 수도 돌아갈 곳도 없다.
-「여행생활자」: 유성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