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723

그리움만큼 상호성을 갖고 있는 것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그립다는 것은 그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움과 외로움은 본질적으로 다를 뿐더러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더러의 자신의 감정에 무관심한 이들은 그리워서 외롭다. 외로워서 그립다고 아이러니하게 자신의 감정을 서술하며, 더욱이 이런 표현은 듣는이에게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감정은 잘 구분되어야 한다. 외로움은 라디오와 같다. 듣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광범위하게 송출하지만 정작 누구에게 보내는지. 수신인이 없는 비루한 감정이다. 반면에 그리움이란 휴대폰이다. 나의 그리움은 사람이건 사람이 아니건 특정한 수신자에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그리워서 외롭다라는 말은, 난 네 빈자리로 힘들지만 어쨌든 아무나 와서 채워줬으면 해.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그리움의 대상이라면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어떨까. 따라서 그리움은 진실되어야 하고 순수해야 한다. 다른 이유도 있다. 나는 신을 믿지만 특정한 부분에서는 무신론을 우선하기도 한다. 특히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서 그렇다. 세상에는 신이 만드는 것과 같이 무에서 유로 창조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은 유기체가 종의 이탈과 진화로 수많은 생명체로 분화했듯, 우리가 느끼는 그리움은 작은 세포(또는 더 작은)가 생명체로 만들어지 듯 필연상호적이라는 것이다. 그리움은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그리움이 생긴다는 것은 그 대상의 수신기를 울리는 의미있는 일이며, 존재의 표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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